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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는 A Beautiful Communication을 줄인 말입니다. ABC 대화교육원에서는 인간관계 화목을 위한 대화 교육과 정신건강을 위한 상담 교육등의 프로그램으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ABC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abclove


 
 

가족 중에 '조울증' 환자 있다면, '조증' 일때 약 복용해 충분한 수면 취하게 하세요

[LA중앙일보]
원인은 유전·스트레스·갑상선 기능 장애
'오직 약으로만 치료 가능' 가족 인식 중요
기사입력: 11.01.10 18:47
조증과 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조울증은 우울증보다 치료가 더 힘들다. 전문의들은 조울증 치료에서 조증을 가라앉히면서 울증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약물치료에 중점을 둔다. [중앙포토]
조증과 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조울증은 우울증보다 치료가 더 힘들다. 전문의들은 조울증 치료에서 조증을 가라앉히면서 울증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약물치료에 중점을 둔다. [중앙포토]
여천기 정신과 전문의(ABC대화교육원 이사장)는 “우울증보다 치료가 더 힘든 것이 바로 조증과 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조울증”이라며 “미국 인구의 1~2% 정도인데 생각보다 한인 가정에 이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쉽게 치료가 안 되어 장기화 되기 때문에 주변 가족들의 고통이 심함을 지적하며 “그래서 가족들이 자칫 자포자기 상태에서 방관할 수 있음”도 아울러 경고한다.

# 조증일 때의 환자 상태 이해하는 것이 중요

여 박사는 "오랜 동안 조울증 환자를 둔 가족들이라도 정확히 환자가 왜 그 같은 행동을 하는 지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다"며 "환자를 심적으로 이해못하면 다루기가 그만큼 더 힘들다"고 설명한다.

우울증은 외부와 관계를 피해서 혼자서 움츠러들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위험성이 있어서 그렇지 직접적으로 주변을 괴롭힌다거나 돌아다님으로써 올 수 있는 위험성은 없다.

그러나 조울증 환자는 울증 상태에 있다가 일단 조증으로 옮겨가면서 증세가 판이하게 달라 문제가 된다. 여 박사는 "조울증 환자는 90%는 우울증 상태로 지내고 10%는 조증 상태로 지내는데 환자는 조증 상태인 10% 기간 동안에 90% 동안에 못했던 모든 것을 다 해내려 한다고 이해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울증 상태일 때는 의기소침하고 세심증으로 자신의 표현을 극도로 억제한다. 그러다 뭔가의 계기를 잡아 기분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에 가족과 주변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대표적인 증세가 정서 사고의 팽창이다. 특별한 이유없이 조증이 되면 갑자기 자기 자신이 너무 잘 나게 느껴진다. 또 머리가 너무 좋은 것 같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고 무엇이든지 잘 해낼 전혀 근거없는 과장된 자신감을 억제치 못한다.

감각도 민감해져 기분에 맞지 않으면 쉽게 화를 낸다. '나는 잘 났다'는 생각이 팽창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 자기를 거슬리면 성을 낸다.

동시에 눈에 띄게 수면이 줄어 든다. 하루에 2~3 시간만 자도 피곤한 줄 모른다. 여 박사는 "조증 환자에게 물으면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날아갈 듯 기운이 생생하다고 말한다"며 "이 상태를 오래 지속시켜 놓으면 환자 건강을 해쳐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또 사고의 비약이 주체 못할 정도로 뛴다. 여 박사는 "평소 사고의 진행 속도가 50마일이라면 조증이 되면 120 200 마일까지 상승해 한 가지에 집중하기 힘들어 주위가 산만해진다"며 "남성의 경우 사업 아이디어가 쏟아져 여기저기 일을 벌이면서 바쁘게 돌아 다니는데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실패한다"고 말한다.

여성의 경우는 "자그만 사실 한가지를 갖고 온갖 상상력과 사고의 비약을 해서 엉뚱한 말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 다니며 교란시키는 것이 전형적 양상"이라 지적한다. 그래서 가족과 주변이 엉뚱한 오해를 사기 쉽다. 여 박사는 "처음 들을 때는 그럴 듯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듣다보면 논리가 맞지 않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 고통스런 결과를 초래한다

여 박사는 “그러나 가장 치명적 증세는 이들은 목표지향성 행동이 강해져 계획이 많아진다는 점”이라며 가족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임을 지적한다.

예로 사업을 하는 남성이라면 조증이 오면 평소 망설였던 곳에 과감하게 투자를 한다. 그러나 객관적 판단력 없이 충동적 투자였기 때문에 경제적 파탄이 온다.

또 이 때는 평소 억압된 쾌락을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예로 마약을 한다거나 도박에 큰 돈을 건다.

여성의 경우는 쇼핑을 무절제 하게 하는데 특징은 같은 물건 즉 똑 같은 가방을 열개씩 산다. 또 평소 감히 해 보지 못했던 진한 화장을 한다거나 과감한 패션을 입는 것이 특징이다.

또 남녀 모두 성욕이 강해진다. 이것 역시 자신의 성적 매력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때문인데 남성은 이 때 정외혼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길 가다가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과감히 접근하여 오해를 사기 쉽다.

# 치료는 약 뿐이다

여 박사는 치료는 약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 전문의들이 중점을 두는 부분이 “조증을 가라앉히되 울증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조증이 차분해지면서 울증으로 넘어가는 상태가 되기 쉽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계속 조증 상태에서는 환자가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아 탈진되어 건강을 해치기 때문에 가족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약을 먹여 붕 뜬 기분을 가라앉히는데 주력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 박사는 “우울증보다 조울증 치료가 힘든 이유가 조증일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상 환자로서는 행복감에 빠져 있는 상태라 좀체로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아 가족들을 애 먹인다”고 지적한다. 가족들이 힘든 점이 여기에 있다.

여 박사는 “우리와 같은 전문의들은 이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항상 하는 조언이 무슨 방법을 동원하든 약을 먹여 잠을 자도록 하라는 것”이라 설명한다.

# 수면이 회복되면 치료 시작된다

전문가들은 ‘조증을 잠재우려면 환자를 잠재우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증이 생기는 이유도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든가 혹은 집안에 일이 있어서 평소보다 수면이 부족한 환경이 조성될 때 이다. 여 박사는 “환자에게 약이 맞는가를 알아보는 방법도 그 약을 먹고 환자가 잠을 충분히 자기 시작했다면 맞는 약인 동시에 치료가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그만큼 조증을 가라앉히는데 수면이 중요한 역할을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책임과 몫은 전적으로 주변 가족에게 있는 것”이라며 “환자 당사자에게 왜 약을 안 먹냐고 다구쳐 봤자 아무 소용없음”을 지적하며 환자에게 맡기면 약을 몰래 버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 조증일 때 환자와 대화법

조울증 역시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기본적 원인은 유전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유전 인자가 아닌 복합적인 여러 유전인자가 작용한다. 여기에 환경적 요인으로 스트레스를 들 수 있고 신체적 원인으로 갑상선 기능 장애가 있을 때 조울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여 박사는 “이제껏 조울증 환자를 대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 인생의 실패에 대해 과도한 반응을 나타내면서 자신의 실패를 180도 되돌려 놓겠다는 생각이 강한 성향인 사람들에게 많은 것 같다”며 이들과 대화하는 요령을 몇가지 알려준다.

-환자를 대할 때는 ‘아픈 사람’이란 전제하에 논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면 더욱 화를 돋군다.

-조증이 심할 때 어떤 행동을 제지 하려 하면 화를 내고 자칫 난폭해 질 수 있다.

-조증일 때는 간단히 메시지를 짤막하면서도 강한 톤으로 말해야 알아 듣는다. 예로 ‘약을 먹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다’ ‘~이것을 하고 싶으면 너는 ~을 먼저 해야 한다’ 등등.

-조증이 가라앉고 난 다음에는 조증일 때 한 행동을 꼬치꼬치 따져 묻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시 재발할 수 있다.

■여천기 정신과 전문의 조언
수면시간 줄어들면 '조증' 신호…지나친 간섭·통제 안돼


기분이 붕 뜨는 조증일 때의 양상은 개인에 따라 다른데 특히 여성의 경우 말이 평소보다 빨라지면서 많아져서 심할 경우 혼자서 1시간 2시간 계속하는데 논리나 사실과는 무관한 내용들이다. 이 때는 피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응해주면 끝이 없고 오히려 증세를 부추길 수가 있다.

남성의 경우 사업상 거래나 중요한 약속은 조증인 상태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낭패를 볼 수 있다.

'약'밖에 치료가 없다는 사실을 환자는 물론 가족들이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인들은 정신병이라 하면 자포자기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향이 강해 '약을 먹어도 무슨 소용있나'하는 자괴감이 깔려 있다. 치료약을 통해서만 진정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환자는 조증일 때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에 가라앉히길 원치 않는다. 따라서 환자에게 '약을 왜 안먹느냐'고 다구쳐 보아야 소용이 없다. 무슨 방법을 동원하든 약을 먹어야 할 책임이 있는 쪽은 가족들이다.

겉보기에 괜찮아졌다고 해서 약을 중단하는 가족들이 있는데 이것이 병을 더 악화시킨다. 요즘의 조울증 약들은 유해하지 않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기준은 바로 수면시간이다. 수면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조증이 올 위험 신호임을 알고 평소와 같은 수면시간을 유지시키는 것이 예방책의 하나다.

환자에게 너무 간섭하지 않는다. 자신을 지나치게 통제하려 할 때 조증이 도질 수 있다. 특히 여성이 조증이 될 경우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대담하게 노출시키려는 충동을 억제키 어렵기 때문에 남성들과의 접촉을 비롯해 외출 등을 삼가는 것이 후탈이 없다. 남성의 경우 유흥업소 출입을 워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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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COM-Seoul Spring Scenery- 서울의 봄- 15April 2009
 2009 by US Army Korea - IMCOM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마다 각각 다른 이유 때문에 불행하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명작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입니다. 80년의 긴 생애를 남 못지않게 노력을 했으나 종국에는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었던 결혼가정생활에 시달렸던 톨스토이의 절규 같은 말을 읽으면서 정말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많이 생각했습니다.

나의 지금 결론은 가정의 구성원(가족들) 사이의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라는 것입니다. 즐거울 때, 기쁠 때, 만족했을 때의 Communication도 중요하지만 괴로울 때, 안타까울 때, 답답할 때, 억울할 때, 화날 때, 정말 무엇을 원할 때에 유효하게, 원만하게, 적절하게 Communicate를 해서 문제를 미리 방지하고 너무 싸우거나 서로 담을 쌓거나 서로에게 너무 상처를 주지 말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이슈(Issue)는 역시 자식들의 성장, 교육, 장래와 부부간의 관계일 것입니다. 기본적이 생존(가령 내일 아침 끼니 걱정)만 해결되면 먼저 걱정거리로 등장하는 것이 자식, 부부 문제일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어떻게 하면 나의 남편(아내)과 자식이 나에게 Communication 하려고 하는 것을 너무 힘들지 않고 충분히 정확히 듣고 알아낼 수 있을까?

2. 어떻게 하면 내가 Communicate 하고자 하는 것을 남편(아니)과 자식에게 똑똑히 정확히 유효하게 Communicate 할 수 있을까?

3. 어떻게 하면 부부간, 부모와 자녀 간에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Individuality)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서로 손해 보지 않는 방법으로 Communicate 할 수 있을까?

4. 더욱 중요하게는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살려고 하는 분들에게는 하나님,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올바른 가족 관계 인간관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누구(가령 아버지나 가장이나 부모)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그냥 따르기를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는 없고, 그런 한국 부모들이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ABC 대화교육원"에서 여러분이 하는 대화 교육도 따지고 보면 더욱 쉽고 유효한 Communication의 방법을 서로 배우고 토의하여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의 서로의 기대(Expectation)를 가능한 한 충분히 충족해 줄 수 있는 가족이 되게 도와드리는 단 하나의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더 나은 배우자, 부모, 이웃, 그리고 시민(Citizen)이 되고 이런 가정을 통해 자라나는 2세들이 더 떳떳하고 성공적이 세계시민이 되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몇 십년 전부터 뜻있는 여러 선배가 민족 개조(National Character Rebuilding)를 부르짖었습니다. "ABC"의 이런 노력이 이 민족개조의 조그만 디딤돌이 되기 기대합니다. 무엇보다도 더 우리의 이런 노력이 진정으로 예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느끼면서 우리가 풍요 로이 살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기대합니다.

<신경정신과 의사, ABC 대화교육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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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DSC7610 by titicat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나의 앞길 막는 친구 용서 했나요?” 라는 기독교 성가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앞길을 막는 것 같은 사람 중에 배우자를 떠올리는 것은 필자만이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는 자기중심적인 자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몸으로 살고 그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남의 몸을 빌려서 살고 남의 두뇌를 써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남의 경험을 기초로 산다는 것도 크나큰 한계에 부딪힙니다.

내가 옳을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내가 꼭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자리(마음)에 앉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드물고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내 생각대로 내 판단으로 그 가는 길을 정해 놓습니다. 그 길에서 누구라도 (예를 들어, 배우자) 이쪽을 보고 막고 서 있든지 무어라 하면 괴롭고 화나고 심하면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의 인생입니다.

제가 어릴 때 수동적이셨지만 합리적이셨던 저의 어머니가 가끔 하시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길을 두고 어찌 뫼(산)로 가려 하느냐”. 요즘에야 그 말을 결혼 생활에 연결시켜 보게 되었습니다.

배우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딱 버티고 서 있는 길은 갈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곧바르게 잘 포장된 고속도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험한 산길 입니다. 앞이 막힌 길이지요. 골프 치는 분들은 이해하실 거센 러프이거나 워터헤저드 입니다.

서로 합의해서 같이 가지 않은 길은 절대로 “길”이 아니고 “뫼”라는 말 입니다. 길 아닌 곳을 막고 있는 친구(배우자)에게 화낼 일도 없고 서로 마음 상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서로 굳이 용서할 일 도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감사할 일이지요.

성경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것이 결혼생활, 가정생활에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각각 다른 두 사람의 의견을 합쳐 하나로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협력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필자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결론이 있습니다. 협력하여 닦아가는 길은 대화가 통할 때 가능합니다. 대화기술이 가장 유효한 방법이었습니다. 대화교육원을 통해 대화하는 방법(의사소통기술)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여천기 박사[신경정신과 의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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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09/09/24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곱씹어 생각케 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 뫼로 가는이 2009/09/24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내용인 것 같아요. 글쓴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궁금한게 있습니다. 때로는 뫼로 가야할 때가 있짢아요. 길을 두고 뫼로 간 분들도 있는데 이에대해 필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나그네 2009/09/26 04: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궁금해 지네요.^^

    • 여 천기 2009/09/26 0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좋으신 질문 입니다. 글을 쓰면서 저도 이점에 대해서 생각 해 보았습니다.자신이 딴딴한 대로라고 착각한 길이 정말은 험한 산길인것을 숙지하고 조심해서 대처하여 앞으로 나간다면 이의가 없습니다. 뫼로 간다는 것을 인지했으면 길을 찾아 보아야 겠지요. 인간관계(배우자)에서라면 그 관계로 부터 찾아야 되겠습니다. 서로 대화가 통할수 있다면 찾고자 하는 길이 보이게됩니다. 대화가 통한다는것은 길 문이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 뫼로 가는 이 2009/09/29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중요하군요. 감사합니다.

왕따버전
왕따버전 by jaehune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어떤 자살이든 자살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최근에
11세 소년이 자살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원인은 급우에 의한 ‘왕따(집단 따돌림)’였다고 합니다.


왕따는 언제 어디든지 있습니다
. 제가 중학시절 6. 25 사변 직후에도 급우들에게 조금씩 얻어맞았는데 학생이라면 치러야할 과정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자신도 한두 번쯤 발길질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왕따는 제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너무 심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왕따는 애교스럽기까지 합니다
. 요즘 집단따돌림은 더 거칠어지고 더 지능적이어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그 대상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직접 말과 행동으로 괴롭히고 나아가 전자 매체(예를 들어 인터넷)를 통해 저질러지는 것이 이전과는 사뭇 차원이 다릅니다.


왕따 당하는 피해자는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되어 자살에 이르게도 됩니다
. 어린 청소년 시기에 친구는 거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그들로부터 따돌림 받고 무시당하는 것은 인간존재 가치를 박탈당하는 것과 버금가는 심각성을 가집니다.

왕따를 하는 쪽은 얼핏 보면 강한 듯이 보이나 그 또한 가정불화나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의 피해자 일수 있습니다. 피해자나 가해자가 동전의 양면 양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불화의 피해자가 약한 친구를 괴롭히며 왕따를 하는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가해자가 됩니다
. 가해자는 마음의 고통, 불안, 스트레스를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푸는 것입니다. 용감하다거나 씩씩함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것을 부모님 들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집단 따돌림과 연관된 청소년들의 정신적 황폐 혹은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을 드리겠습니다


해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부모가 부담을 져야 합니다. 모든 부모가 생각하고 실천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고 쉽게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해결책은 자녀를 훈련/훈계
(discipline)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훈계/훈육을 받으며 성장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세밀히 가르치고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성 교육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는 서당이나 학교에서 도덕 훈육시간이 있었습니다
. 선생님이 거의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교육이 가능 했습니다. 요즘은 선생님에게 권위를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훈육/훈계를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교회나 종교 기관에서도 권위는 주어 지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가정, 즉 부모뿐입니다.


부모가 자기도 충분히 배우지 못한 훈계
/훈육을 자녀에게 적용하려면 어렵지만 그 길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제대로 훈련/훈계(discipline)받고 자란 아이들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감이 높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이 있고 반사회적인 행동에는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호감 가는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왕따를 당할 위기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 그러나 훈육을 제대로 받은 자녀는 잘못된 힘이 자기를 해칠 수 없음을 확고하게 믿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힘이 인생에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이 그를 지켜주는 자산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부모만이 자녀를 훈련/훈계
(discipline)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훈계를 하고자 하는 부모(모든 부모가 해야 합니다)는 자녀와 대화가 통해야 합니다. 그 후에 훈계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권위에 대한 순종과 적절한 대응, 부적절한 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 청소년의 정신세계와 사회생활을 크게 좌우하게 됩니다. 지금 시대에 이 모든 것들을 가르치고 격려할 유일한 존재는 부모입니다.

 

ABC 대화교육원에서 제공하는 자녀교육(Parenting)과 자녀훈련(Discipline)을 위한 교육이 부모님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교육이 될 것입니다.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 또한 부모자신의 자신감을 위해서 꼭 부모교육 과정을 마치시길 권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ABC 감독]

 

2009/08/29 - [ABC 소개] - e아름다운 대화 필진 및 ABC스태프 소개(4)-여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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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쏠트[S.S] 2009/09/26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왕따를 당한 사람은 피해자에서 또 다른 가해자가 되지요..
    참 무서운 일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Good-bye!
Good-bye! by Martin LaBar 저작자 표시비영리


저는 얼마 전 미국 동부에 사는 딸네 집에 일주일 정도 방문했습니다. 방문 목적은 20개월 된 손주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손주는 몇 마디 단어를 소리 내는 정도여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닙니다. 손주와 시간을 보낸지 일주일이 지날 무렵 사람과 사람이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 본질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아침 저녁으로 손주를 데리고 매일 산책을 했습니다. 같이 걸을 때, 저는 상체를 굽혀야 했습니다. 손주는 순순히 내손을 잡고 발을 맞춰 따라 주기도 했지만 대부분 풀, , 개미들을 들여다 보고 만지고자 했기에 제 상체를 낮춰야 했던 것입니다.

 

아이는 나무 위의 다람쥐를 관찰하는 듯하기도 하고 하늘을 나르는 새를 올려다 보느라 바빴습니다. 또는 가다가 멈추고 앞으로 뛰고 뒤로 가고 제 멋대로 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따라가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길가 꽃 위의 나비를 쫓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벌을 따라 뛴다든지 마른 개똥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만질려 할 때는 마음이 조마조마 하기도 했습니다.

 

손주는 나에 대한 배려는커녕 이기적이었습니다. 나의 손을 잡고 잠시라도 내 발걸음을 맞추어 주는 것이 그가 나에게 할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입니다.

 

손주와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쓴 이유는 이것이 우리 일상의 인간관계, 그리고 대화양식의 일면이 생각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아내와 같이 손잡고 제대로 발을 맞춰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제 손주의 행동처럼 멋대로 뛰고 멈추고 뒤로가고  옆으로 갈 때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이기적이라도 최대한 맞춰주려고 하지만 아내를 상대할 때는 그렇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나는 우리 손주처럼 ‘20개월 수준이었습니다.

 

아내, 손주, 이웃, 또는 나의 적 일지라도 내가 사랑과 인내를 100% 듬뿍 가지고 조건없이 대화에 임하는 것이 바로 어른스러운 자세입니다.


아내
50% 대 나 50%의 인내가 아니라 내가 100%의 인내를 갖고 대하다보면 아내도 100%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상호 100%를 누리려면 부부가 같이 아름다운 대화기술을 배우고 써야 합니다. 아내의 잔소리(?)에 조건없이 귀를 귀울이고 그 마음을 그럴 수 있다고 알아주는 100%의 마음이 되도록 기술을 배우고 활용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대화기술은 분명히 어렵고 좁은 길입니다. 이 길을 가면 20 개월짜리 내 마음이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50%를 주시고 나머지 50%는 너네가 해라라고 하지 않으시고 100%를 주셨습니다. 이제 남은 100%의 몫은 우리의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윈윈(win-win)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도 윈, 나도 윈, 내 아내도 윈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일들이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신경정신과 의사]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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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6 - [ABC 소개] - ABC 대화교육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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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09/08/29 0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서 귀한 원리를 깨달으시다니..... 감동입니다.
    우리 모두는 100%를 할 수 있다는 말씀 정말 힘이나고 공감이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garden 2009/08/29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화와 소통의 기본을 배워가는 글이네요...
    감사드립니다.

Pelicanos em Dos Mosquises / Pelicans at Dos Mosquises
Pelicanos em Dos Mosquises / Pelicans at Dos Mosquises by
Márcio Cabral de Moura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지난주일 한 박사님의 대화교육 세미나에 참여하기 위해 LA 인근 코로나 시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강의도 무척 좋았지만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사도행전 9장에 사도바울의 변화되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강한 빛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3일 동안 눈먼 상태에서 남의 도움을 받아 새 사람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이번에는 부부대화에 대한 강의 때문인지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3일 동안 신랑의 눈을 가리고 전적으로 신부에게 의존하여 돌봄을 받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 인간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고 혼자서는 무력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전적으로 부모에 의존하는 갓난아이부터 독립된 인간이 되는 기본이라도 배우려면 15여년 이상 긴 시간을 보내야합니다.

그 후에도 신체적으로는 한 독립된 사람이 되지만 정신적으로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드냐 하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 남에게 더 의존하게 되는 성향이 있습니다. 남에게 의존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불안과 죄의식을 느끼고 반발하게 됩니다.

이런 의존과 반발이 주기적으로 또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결혼 생활의 한 부분이고 가장 고통스러운 불화의 한 면 입니다. 이런 의존과 반발은 남녀가 다 있으나 표현 방법이야 물론 다릅니다.

우리의 결혼 문화는 표면적이나마 남자가 앞장서서 능동적으로 가이드 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니 결혼식 후에 여자보다는 남자의 눈을 가려서 아내의 전적인 돌봄과 통제권 하에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가정의 지도자가 깨우쳐야 하는 귀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통제권을 일시적으로 라도 잃는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에게 쉽지 않습니다. 부부가 서로 100% 통제권을 고집하면 한 단위로 같이 살기도 힘들고 살더라도 역기능 가족이 됩니다.

Sweethearts
Sweethearts by adwriter 저작자 표시비영리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rite of passage)라는 의식은 거의 사라지고 있으나 인위적으로라도 성인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화려한 결혼식에서 주례말씀을 듣고 식을 올려 새 가정을 차리지만 정작 새 가정에 걸맞게 변화된 두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같은 사람입니다.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무엇이 얼마나 변화해야 하는 것입니까?

서로 성숙한 의존을 하며 상대의 통제를 선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옛 사람이 바뀌어 새 사람이 돼야 합니다. 본인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배우자가 자신을 도울 수 있고 도우려고 노력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배우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배우자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길입니다. 3 일 동안이라도 전적으로 믿고 따라보는 경험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았고 거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불완전하고 연약하고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고 이웃이 필요하고 그보다 결혼 후에는 배우자가 필요합니다. 부모에게는 의존하고 반발했지만 배우자에게는 좀 더 어른답게 의존을 받아들이고 반발을 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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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yungmi 2009/08/25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2. 나그네 2009/08/25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주인공(이승기)의 사례와 보트사고로 형제를 잃어버린 사고를 예로 들어 죄의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죄의식은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 같은 것입니다
. 오늘은 우리들의 행동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죄의식의 여러 형태에 대해 더 깊숙이 나누고자 합니다.


Friendship
Friendship by h.koppdelaney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부모의 이혼에 내 탓을 생각하는 자녀

부모가 싸움을 하면 아이들은 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 그런 부모가 이혼이라도 하면 자녀는 누구나 자신을 탓합니다. 물론 많은 부분이 무의식적인 죄의식입니다.

 

우리의 많은 의식이나 행동은 밑바닥에 깔려있는 죄의식의 발로입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청소년 행동의 상당 부분이 이런 죄의식의 반작용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들이 잘못되거나 아프면 부모는 먼저 자기 탓을 합니다. 학교성적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화를 내는 부모일수록 그 밑바닥에는 자신의 죄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죄의식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이겨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 죽음이 자살이라면 무게감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아주 값진 것을 잃거나 내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상실감과 더불어 모든 것이 나의 과실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마음 저변에 깔려 있는 진짜 잘못을 용서받고 싶거나 탕감받고 싶어서 죄의식이 생기는지도 모릅니다.

 

자기과실이 전혀 없는데도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성폭행을 당해도 내 탓

 

어떤 12세 사춘기 남학생이 삼촌으로 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자기는 나쁜 놈이라며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경우에도 네가 뭘 잘못 했기에의 주위의 시선이 내가뭘 잘못했지!”로 믿게 되면 심한 고통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 그리고 주위의 따가운 말 한마디 때문에 죄의식은 확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이웃이 무표정하게 이쪽을 보고 그냥 지나가면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며 내 탓을 찾습니다. 이렇게 내 탓을 찾는 죄의식의 저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람은 태어나서 남에게 조금이라도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살기 위해 서로 남을 필요로 합니다. 남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에게서 뭔가를 바랍니다. 자기가 바라는(의존심) 바람이 100% 얻어질 수 있거나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상실, 실망을 매일 체험하고 있습니다.

 

Guilt Ridden Glasses
Guilt Ridden Glasses by Evil Erin 저작자 표시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죄의식 생겨나


끊을 수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남으로 부터 심신의 타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 자신이 받은 상처의 아픔, 인간관계 파괴에서 오는 상실감, 피해자(혹은 가해자 포함)에게 던져지는 비난이 죄의식을 부풀게 합니다. 심각한 정신적 부담과 고통은 마치 음지에서 독버섯이 자라듯이 퍼져갑니다.

 

저를 찾으시는 분 중에 심한 죄의식 때문에 정상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부분적으로나 전적으로 포기하려는 분이 있습니다. 젊은이 중에는 자기의 죄의식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쁜사람처럼 행동하거나 악인의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이런 분들과 만나면서 저는 그들의 죄의식을 줄여 주고 싶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괴로움을 받고 있는 이(특히 젊은이)에게 자기 안의 죄의식을 표현 할 수 있게 도와 주고 그 고통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보담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정신과 의사]

 2009/07/26 - [여천기 칼럼] - '찬란한 유산' 주인공의 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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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밝은터 2009/08/02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사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죄의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귀한 글을 블로그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 축복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읽기를 소원합니다.

  2. 나그네 2009/08/03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하루라도 적게든 많게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는것 같습니다. 불편한 관계일수록 죄의식을 많이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크게 남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3. 야생화 2009/08/03 1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시절부터 쉽게 느끼곤하던 죄의식에 대하여 정리하여 주신것 읽으니 위로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죄의식에 빠지게되면 자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가슴속에 미아 처럼 떠도는 죄의식이 절대적인 나의 잘못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좀 자유스러워질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4. 정원 2009/08/06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정적인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이 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나 봅니다. 나를 객관화 할 수있는 기본적인 생각인 것 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이승기 / 국내가수
출생 1987년 1월 13일
신체
팬카페 가수 이승기 공식 팬카페
상세보기

양심의 유무가 인간세계와 동물세계를 구분하는 것이라면 죄의식은 인간의 특권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죄의식은 인간에게 무엇보다 절실하고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교회에서 전도폭발 훈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훈련에서 인간을 정의할 때 인간은 한마디로 죄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톨릭에서는 “mea culpa, 내 탓이로소이다라는 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합니다. 비슷한 이유겠지요. 죄의식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심리적인 생성과정과 그 정도가 각양각색입니다.

 

여러 종류 중 하나로 살아 남은 자의 죄의식(survivor’s guilt)’이 있습니다.

 

두 형제가 조그만 배를타고 폭풍우 속에 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무섭고 당황하여 다투다가 배가 뒤집혔습니다. 한 사람은 살고 다른 형제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럴 때 살아 남은 자가 겪어야 하는 심리적 고통이 죄의식입니다.

 

이럴 때 인간의 마음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저쪽은 어떻게 했는가, 잘잘못을 따지며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합니다. 결국 살아남은 자는 죄의식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산자의 숙명이고 인간의 숙명입니다.

 

대부분의 죄의식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극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일상 삶에서 크고 작은 죄의식을 경험합니다. 어릴수록 이런 죄의식은 심리적으로 충격이 큽니다. 이들의 감정이나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로 인해 일생을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봅니다.

 

한국에서 요즘 인기 드라마인 찬란한 유산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이 그 좋은 예 입니다. 남자 주인공이(이승기 분)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죽게 된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사는 삶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이런 죄의식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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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susfreak 2009/07/26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2가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린아이의 죄의식에 대해 자세히 다뤄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찬란한 유산에서 이승기는 어떻게 죄의식을 극복해야 하는지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 ckryu 2009/07/28 0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주신 reply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우리가 누구에게나 너무나 중요한 죄의식의 문제에 대해서 더 공부 해서 글을 올리 겠읍니다

  2. 나그네 2009/07/28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3. 야생화 2009/07/29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어린시절의 죄의식은 제가 결부된 사람과의 관계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타인에게 크고 작은 아픔을 주는 경우에 생기더군요. 물론 대단히 제중심의 판단일 때도 있고, 상대의 반복되는 정죄성 지적으로 생길때도 있었어요.

    특히 어린시절의 추억이 죄의식으로 자리잡은 경우에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죄의식을 느끼게된 상황에 결부된 분들의 도움이 있으면 좋겠지요
    답글난에 무겁게 화답하여 약간 쑥스럽지마는 죄의식 안가질께요*****

내 의견이 옳습니까? 당신의 의견이 옳습니까?

내 생각도 옳고 당신의 생각도 옳습니까혹은 둘 다 틀립니까?

배우자의 의견이 나의 의견과 맞으면 나는 배우자가 옳다고 생각합니까?

혹은 꼭 내가 옳았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의견이 안 맞을 때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까?
꼭 상대방이 틀려야 합니까?
어느 쪽이 옳습니까? 둘 다 옳습니까? 둘 다 틀렸습니까

Taped - Owen's 1
Taped - Owen's 1 by fensterbme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럭저럭 괜찮은 결혼생활에서는 대부분의 결정을 어떻게 해서라도 서로 의견을 맞추어가며 선택하여 삽니다. 결혼 후 처음에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 싸움보다는 겉으로라도 맞추면서 삽니다. 한쪽 의견을 따르기도 하고 눈치로 적당히 결정하기도 합니다.

 

겉으로 맞추며 살다 보면 그 밑바닥에는 상대에 대한 불신이나 불만이 서서히 쌓이게 됩니다. 머지않아 우리의 의식 속에 깔려 있던 불신과 불만이 표출되면서 나는 옳고 저 사람은 틀렸다 하고 노골적으로 나오는 것이 인간으로서(부부로서)의 상정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내 생각과 다른 남의 의견에 인정 혹은 찬성하는 것이 힘듭니다. 배우자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같다고 가정하며 행동합니다. 배우자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질 때 세상에 변이라도 생긴 듯 반응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자기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믿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아이 낳고 같은 음식 먹고 같은 공기로 숨 쉬고 같은 침대를 사용한다고 의견이 꼭 같습니까? 이래도 의견이 서로 틀리는 것이 정상이 아닙니까? 이때 상대는 틀리고 자기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평소의 자세입니다. 대개 거의가 다 예외 없이 나의 의견은 괜찮은데 너의 의견은 틀렸다 하는 것으로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산 빨간 자동차가 집에 와서 보니 더 산뜻한데...당신의 안목은 역시 좋아요.” 부부가 자동차를 구입하며 오가던 의견 차이에 대한 상대의 반응입니다. 이런 말을 배우자에게 할 수 있고 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모두 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길을 찾아 조심스럽게 운전하는데 옆에서 잔소리를 합니다. “오른쪽으로 가야해요.

 

“아, 그래요?” 왼쪽으로 가야 하는 것을 알아도 배우자가 오른쪽이라고 말하니 일단 수긍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 하는 듯한 아내의 길 안내를 못 믿습니다. 아내가 우측 하면 좌측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내의 말을 못 들은 척하거나 “아는 체 하지 마, 괜히 더 혼동만 시키니까” 하고나면 이때부터 모처럼만에 나온 나들이는 불편해 지기 시작합니다.

 

어쩌다가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니) 50%의 확률로 우연히 맞출 때가 있기는 합니다.

 

“거 봐요. 내 말은 말 같지도 않아요! 전혀 듣지를 않으니...

 

아내는 이때다 싶어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며 과거사를 잊지도 않고 되뇝니다. 또 시작이구나! 어떻게 저 입을 막을 수 있을까?! 나는 입을 다물고 아내는 그래서 더 화가 나서 떠드니 이 순간을 피하고 싶을 뿐인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니면 본때를 보여줄까, 저 버릇을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까 등으로 고민합니다. 더 큰 말다툼이 되기 일상이고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조마조마한 분위기에서 더 큰 싸움이 안 되고 집에 오면 천만다행입니다.

 


"Wow--even on my wedding day, this is pretty cool!" by kevindooley 저작자 표시

 참으로 세상에 별일도 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상황이 아내가 분명히 목소리를 높여 “남자가 어찌 그리 속이 좁아요?”라고 소리를 질러야 할 순간 이었습니다. 내가 들은 아내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자기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내가 해야 할 적절한 말을 찾기가 어려웠을 때 아내는 다시 말합니다.

 

“속상했을 텐데 많이 참으셨네요.

 

나는 정말 반신반의 하면서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 후부터 우리는 지금까지의 세상과 다른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모든 생각이나 사고 작용을 몰아내는 것이 의도적으로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습니다. 비워놓은 마음은 비어 있지 않고 곧 이기적인 생각으로 차 버리는 것이 일상입니다. 제 생각에는 비운 마음을 아름답게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에 채워 보는 것 입니다. 예로 상대방의 생각이 그럴 수 도 있다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이 땅 에서 우리 가정 안에서 누리려면 상대방이 나 자신보다 더 바른 생각을 가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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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괴물 2009/07/23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부라는 건
    어쩌면 생활속에서 제일 오래 같이 부딪쳐야 되는 사이니까

    용인하거나 체념하게 될 순간이 많을꺼라고 생각해요.
    마음을 비운다라...

  2. 밝은터 2009/07/23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것 같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는 배우자.
    사람이 항상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없으니
    배우자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특히 나쁜 점은 기억에
    "또렷히" 남아 있죠.
    컴퓨터처럼 Reset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풀기 어렵지만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하고 쓰신 내용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3. 야생화 2009/07/23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려주시니 상기됩니다
    비록 조금 알아도 아는 조금을 응용하는 습관
    제것으로 만들어야겠가고 작심해봅니다

  4. 나그네 2009/07/23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부처럼 오묘한 관계가 또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너그럽다가도 부부관계에서는 왜 그리도 예민하게 되는지...

    • ckryu 2009/07/28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나 옳으신 말씀 입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중요한 것 일수록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 가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정말 평생 교육이 필요 한 이유이지요.

 지난 5월 셋째 주 토요일 오후 730분 한 교회에서 모 가정사역 센터 주관으로 청소년 약물 문제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다. 화창한 토요일의 이른 저녁이어서 그런지 이 일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분들 이외에는 찾은 이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미나에서는 청소년을 둔 부모들이 꼭 한 번 와서 들어야 할 내용이 다뤄졌다.

 

이 모임에는 청소년 약물문제 치료 예방에 경험이 많으신 Mrs. (Caroline) LA에 있는 AADAP(Asian American Drug Abuse Program)에서 세 분을 초청해서 그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Rough days
Rough days by bayat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 세미나는 몇몇 전문가들이 자신의 아는 바를 설명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게 진행이 되었다. 두 청년은 AADAP 에서 약물복용과 중독으로 6개월 내지 12개월씩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수년 전에 그 센터에서 18개월의 치료기간을 끝내고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세 사람 모두 인생의 시작은 모두 평범했고 그들은 모두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다가 10세 전에 미국에 이민을 왔던 이들이다.  

 

마약을 시작한 것은 가정에 문제가 발생한 후다. 한 청년은 부모 중 한 쪽의 사망으로, 다른 청년은 아버지의 실직과 이혼으로 가정이 깨어지는 아픔이 있었다.

 

친구들의 권유로 마약을 하게 되었는데 약을 먹기 시작해서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까지 5-6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주위사람들로부터 돈을 꾸는 것, 훔치고, 학교결석, 가출, 유치장 신세를 지는 일이 반복됐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치료를 받게 되었고 AADAP 에서 기거를 하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 기간이 1 6개월이나 됐다.

 

그는 이런 치료를 받아도 한 번의 치료로는 영구히 약물을 안 쓸 가능성은 10% 이내여서 그 치료가 얼마나 힘든 지를 설명했다. 그는 약물 치료는 오랜시간에 걸쳐서 여러 차례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그 청년은 중독의 삶을 실감나게 말해줬다.

 

청년들의 고백과 간증 그리고 개인적으로 상담을 했던 그동안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 약물중독에 대해 몇 가지 첨언을 하고자 한다.

 


s p l i f f # t h i r t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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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마약에 손댄다

 

첫째 약물 남용과 중독은 청소년 시절에 시작된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 고등학생의 약 3분의 1이 마리화나를 복용 하고 약 8%가 코케인이나 그와 유사한 마약을 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중고등학교에 약물이 없는 곳은 없다고 봐야하며 초등학교도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대도시 중심부의 학교가 더 심각한 수준인데 외곽 학교라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약물 남용이 가장 심하게 드러나는 나이가 18세에서 22세이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큰 말썽 없이 지났다고 해서 안심도 할수없는 처지다.

 

사춘기는 부모와 사회에 정상적으로 반항을 하고 자기 주장을 하는 시기이다. 중고등 때에는 특히 7-10학년 사이에는 친구의 말은 천금처럼 들릴 때이고 친구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때이다.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약물을 손대는지 안 대는지가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outh Bank Portrait
South Bank Portrait by an untrained eye 저작자 표시비영리


부모 자식간 소원하면 마약 손댄다


둘째는 청소년 약물 남용은 어떠한 가정에서도 가능하나 부모와 자식의 사이가 멀면 멀수록 남용 가능성이 크다
. 부모가 없는 경우, 있어도 의사소통이 없는 경우, 부모자신이 약물을 남용하는 경우, 부모사이에  의사 소통이 없이 불화 하거나 가정 환경 상의 큰 변화가 초등학교, 중학교 시기에 있는 경우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다룰 때 자제(self-control)를 못하거나 너무 방목형(?)으로 키우면 청소년의 자제력, 충동 억제력이 약해지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돈을 너무 주든지 해 달라는 것을 모두 받아주면 그 위험도는 상승한다.

 


마약 사용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셋째 청소년이 약물을 쓰는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는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상당히 힘들다. 어떤 종류이든지 현저한 행동의 변화, 기분의 변화, 성적의 변화, 사귀는 친구의 변화, 주위로 부터 숨거나 숨기는 것, 식욕장애, 수면장애, 체중변화, 의욕의 변화 등이 있으면 일단은 의심을 해 보아야 되겠다.

 


치료 방법
1

 

넷째 일단 약물남용이 있으면 치료는 첫째 원칙이 약물사용을 완전 중지하게 하는것이다. 약물중단이 안되면 치료를 할 수 없다. 약물을 완전히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병원, AADAP 와 같은기관, 약물남용자들을 위한 합숙소(half way house)를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기관에 입소해서 24시간동안 숙식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약물 남용의 정도에 따라 외래 치료가 가능하지만 청소년의 생활이나 학업을 현저하게 영향주거나 청소년이 외래치료로 그것을 중지하지 못할 때는 입원 치료를 생각해야 한다.

 

일단 약물 사용을 중단하기 위해서 중지된 후에도 가족 치료와 어떤 경우에는 정신 치료도 도움이 된다.


가족치료는 반드시 필요하다
.  부모는 알게 모르게 약물 남용을 조장(enabling)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세미나에서 한 젊은이는 그 어머니가 경찰서에 붙잡힌 아들을 몇 번이나 변호사를 사서 아들을 석방토록 하고 치료를 지연하도록 해 문제가 더 커진 바 있다고 고백했다.

 

또 어떤 어머니는 6년 동안 1년에 2-3회씩 상담기관이나 정신과에 전화를 해서 아들의 약물남용을 호소하고 상담을 받았는데 제대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처방받은 방법대로 따르려면 상당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처방대로 실천을 안해(못해)서 결국은 아들이 20여 년의 징역형에 처해 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물 남용하는 자식이 부모나 다른 가족들의 감정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 적으로 조종하는데 이 끈을 끊고 부모가 자유롭게 되지 않으면 치료가 안 된다.


Bad girl / Chica mala
Bad girl / Chica mala by . SantiMB . (inspiring)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치료 방법2

 

다섯째 미국에서 약물남용의 치료에는 12 Step Program(12개단 치료)을 많이 쓴다. AA(알콜), NA(마약),CA(코케인), ALANON, ALATEEN, GA(도박)등이 모두 이런 방식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

 

이 치료법을 통해서 소외감을 없애고 옳바른 가치관, 자기를 다시 찾는 것, 인생을 정직하게 보는 것, 자기를 정직하게 보는 것 등을 배우면서 올바른인생을 찾도록 할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수 십년 전 미국에서 기독교의 신앙에서 출발했다.

 

그 밑바닥에는 하나님으로 부터 소외된 인간을 다시 하나님과의 정당한 죄없는 관계로 회복해주는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부모가 치료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는 “Let Go” 하고 “Let God” 하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것이다.

 

그러나 성장하는 청소년 아이들을 부모가 팽개쳐두고 하나님께 기도만  한다고 해서 될 것은 아닐것이다. 부모가 자식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했다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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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09/07/23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보고 다시 한번 중독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치료의 고통을 보면서 예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방은 화목한 가정에서 시작되는 군요. 좋은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2. 야생화 2009/07/23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제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워 주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중독의 예방과 치유를 위하여 많은 분들께 참고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