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여름 방학 중에 인턴생활을 마치고 집에 와서 열흘간 지냈다. 아이는 전에 없이 한국에 대해, 엄마와 아빠에 대해, 가정사정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다.
“엄마, 내가 5학년 때 한국 학교에서 쫓겨난 거 기억하세요?”
“토요 한글학교 말이니?”
“네, 까만 안경 쓴 교장선생님이 기억나요.”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5학년 초까지 한글학교에 다녔다. 토요일 아침마다 숙제 안 했다고, 늦는다고 아우성을 치던 한글학교를 잊을 리 없다.
“데이빗이 유리창을 깨뜨려서 벌을 주었는데 아시는지요?”
한글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금시초문이었다. 장난이 심해 남자애니까 그럴 수 있겠거니 하고 분통이 터지는 것을 꾹꾹 누르고 일단 뒤로 물러섰다. 나는 한글학교에 가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했다. 돈이나 물건을 쓴 뇌물작전은 물론 슬픈 표정으로 하소연도 서슴지 않았다.
정 안 되면 큰 소리로 협박하고 위협도 했지만 이것은 완전히 일방적인 게임으로 끝나곤 했다. 아예 말을 안 하고 피하는 상황에서 나는 처참한 심정으로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 후로는 한글공부라든지 한국말 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피했다.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은지가 10년이 넘게 된 것이다.
"엄마, 사실은 그때 장난쳐서 유리창을 깬 것이 아니고 학교 가기가 싫어서 퇴학 받으려고 일부러 깼어요.”
“이럴 수가! 그랬었구나! “
“그랬어? 매주 토요일마다 정말로 학교 가기 싫어서 괴로웠었구나.”
“항상 좋은 의도로 그러신 걸 알았어요. 그래도 정말 가기 싫었어요.”
“엄마가 네 마음을 몰라주어서 많이 답답하고 괴로웠겠다.”
“엄마, 그때 나 때문에 창피하셨죠?”
“창피라고?, 너 때문에 내가 창피했다고 생각했구나.”
“네.”
“데이빗, 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그때 내가 네 마음을 힘들게 했다는 거야. 네가 잘 견뎌줘서 고마워.”
“학교 가기 싫다고 유리창을 깨는 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엄마를 창피하게 해드려서 미안했어요. 더 좋게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네 생각에 네가 최선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 괴로웠구나.”
“네.”
“네가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엄마가 너에게 다른 선택을 주지 않았잖니?”
“음…그래도…”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왜 그토록 한글학교가 싫었는지!!! 궁금했다.
“사실은 선생님들이 엄마와 너무 비슷해서…”
머뭇거리는 그의 표정에서 엄마 미안해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힘들었지. 네 마음을 말해줘서 고맙구나.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고마워요, 엄마. 데이빗이 엄마 사랑하는 것 아시지요?”
여름 방학을 마치고 동부로 떠난 지 2주 후에 기다렸던 전화가 왔다. 오늘따라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데이빗은 여전히 “흠... 음...” 하면서 끙끙거리더니
“엄마, 이번 학기에 한국말 학교에서 배워요, 도움이 필요해요.”
“도움이 필요해?”
“네, 도움이 필요해요.”
단단하게 닫쳐 있던 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세상에서 가장 값진 최고의 선물이 전선을 타고 온다.
“엄마, 사랑해요. 안녕히 계세요.”
“데이빗 사랑해요. 안녕히 계세요.”
“아! 참, 네, 엄마. 안녕히 계세요”
작은 가슴에 쌓인 상처 응어리, 죄의식으로 찌들었던 마음의 문이 10년 만에 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의 괴로운 심정을 어렵사리 알려주는 아들의 마음에 서툴게나마 동참해서 괴로움을 나눌 수 있었기에 우린 서서히 한마음이 되어갔다.
남의 심정을 알아주고 받아 준다는 기본 대화를 훈련한 지 수년이 되었어도 왜 이렇게 어색한지! 아직도 내 의견, 내 생각, 내 마음이 남의 것보다 위에 있기를 좋아한다. 힘든 나와의 싸움으로 작은 정성이 대화의 첫 단추를 열게 해 주었다.
'나눔의 방 > 여명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36.[여명미 칼럼]가족 정신건강교육이란 무엇인가?(Family Psycho-education) (0) | 2009/09/24 |
|---|---|
| 34.[여 명미 칼럼]왕따 여학생 자살 아니면 복수극 (1) | 2009/09/22 |
| 14.[여명미 칼럼] 오바마의 경솔한 발언 뒤 아름다운대화 (2) | 2009/07/29 |
| 11.[여명미 칼럼] 침묵은 금, 아름다운대화는 다이아몬드 (3) | 2009/07/27 |
| 6.[여명미 칼럼]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의 부유 (2) | 2009/07/23 |
| 1.[여명미 칼럼] 10년 만에 열린 마음의 문 (3) | 2009/07/23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심정알아주기와 성숙한 대화로 귀한 열매를 얻으셨네요 추카! 추카!
무엇보다도 데이빗이 10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겠어요. 비슷한 상황들에 처한 부모님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심정 알아주기! 저도 어제 심정을 알아줬더니 아이가 좋아했습니다. 가끔 까먹어요, 심정 알아주기를....^^
'심정 알아주기'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장면이 아름답습니다
쨩 쨩 쨩 입니다